포리루아 (Porirua)
포리루아(Porirua)는 뉴질랜드 북섬 웰링턴 지방의 시이며, 웰링턴 시 바로 북쪽에 중심 업무 구역에서 20 km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많은 인구의 비율의 시민들이 웰링턴으로 통학을 하고 있으며, 위성 도시로 간주된다. 남쪽 끝 카피티 해안에는 포리루아 항이 완전히 둘러싸고 있다. 항구의 동쪽 입구인 파우타하누이는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 강 하구이다. 전체 인구는 2010년 7월을 기준으로 52,000명이다.
포리루아라는 이름은 마오리어에서 유래되었다. "두 갈래 파도"라는 의미로 포리루아 항에 있던 두 개의 부두에서 유래되었다. 이 이름은 19세기 북서 해안의 웰링턴 항에 있는 카이화라화라에서 포리루아 항까지 뻗은 땅을 등록할 때 지어졌다. 카이화라화라에서 나이오와 칸달라 방변으로 연결되는 언덕길은 여전히 오울드 포리루아 로로 부른다. 19세기에 항구에 페리 운항으로 일부 유럽 정착민들이 정착을 하여 성장하였다. 당시에도 일부 마오리인들이 거주를 하고 있었다.
포리루아라는 이름은 마오리어에서 유래되었다. "두 갈래 파도"라는 의미로 포리루아 항에 있던 두 개의 부두에서 유래되었다. 이 이름은 19세기 북서 해안의 웰링턴 항에 있는 카이화라화라에서 포리루아 항까지 뻗은 땅을 등록할 때 지어졌다. 카이화라화라에서 나이오와 칸달라 방변으로 연결되는 언덕길은 여전히 오울드 포리루아 로로 부른다. 19세기에 항구에 페리 운항으로 일부 유럽 정착민들이 정착을 하여 성장하였다. 당시에도 일부 마오리인들이 거주를 하고 있었다.
지도 - 포리루아 (Porirua)
지도
나라 - 뉴질랜드
뉴질랜드의 국기 |
1250년과 1300년 사이에 뉴질랜드의 섬에 폴리네시아인이 정착하였고, 독특한 마오리 문화를 발전시켰다. 1642년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이 유럽인으로서 처음으로 뉴질랜드를 발견했다. 1840년, 영국의 대표와 마오리족의 수장들이 와이탕이 조약을 체결하였고, 뉴질랜드의 주권이 영국에 있음을 선언했다. 1841년 뉴질랜드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1907년에는 자치령이 되었으며, 1947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지만,영국의 군주가 국가원수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 뉴질랜드의 인구는 총 490만 명으로, 이 중 대다수가 유럽계이다.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소수민족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시아계와 태평양 섬사람들이 그 다음으로 많다. 뉴질랜드의 문화는 마오리 문화와 초기 영국 정착인들의 문화에서 기여된 것이 많지만, 뉴질랜드로의 이주가 증가함에 따라, 문화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뉴질랜드의 공식언어는 마오리어와 뉴질랜드 수어